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말하기:
김남현의 <Single>부터 <Cross Tolerance>까지
최희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나와 타인을 위한 장치들
서울을 벗어난 어딘가에 오직 나만을 위한 산책로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산책로는 하나의 길로 되어있지만, 양쪽으로 풍성하게 가로수를 심어놓아 흡사 작은 숲과 같은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길의 폭이 내 어깨에 맞춰져 있어 걷다 보면 어깨에 나뭇가지가 스치며 사각사각 소리로, 또 신선한 향기로 기분 좋게 부딪쳐 온다. 온전히 나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에 걷는 동안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이 1인용 산책로의 가장 좋은 점이다. 짧지 않은 길을 다 걷고 나면 분명히 걷기 전과는 무엇인가 달라져 있을 것 같은 그런 어떤 공간. 김남현의 <Single #14 – Forest for one person>(2011)은 이런 개인화된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에 대한 새삼스러운 상상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모형의 형식으로 구현되었지만, 외향적이라기보다는 내향적이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맺어나가는 작가 자신의 기본적인 성향을 가지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의 조각으로 만드는 김남현의 작업이 지닌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글자 그대로를 본다면 너무 익숙하거나 조금은 모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김남현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관계’에 대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을 전공한 김남현은 입체를 자신의 주요 매체로 다루며 2000년대 초반의 <Single>, <Confined One> 시리즈부터 최근의 <Familiar Conflict>, <Cross Tolerance>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형식적 변모를 거치며 개인과 사회, 개체와 군집, 관계와 구조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반추상 인체 조각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개인으로서 사회와 관계를 맺을 때 일종의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작업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말하는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해보고자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실과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며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느꼈던 불안감이나, 대중목욕탕 또는 병원의 입원실과 같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만나며 개인의 수치심이나 감정들이 순식간에 투명해지는 당혹감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종류의 힘듦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어서, 그것이 여러 번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거나 또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으며, 여전히 고유한 난이도로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음을 김남현의 조각은 상기시키는 것이다.
모순과 고리
그렇다면 ‘개인이나 개체의 사회, 군집 속에서 관계 맺기’라는 비교적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김남현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의 작업에서 발견한 두 가지, 즉 ‘모순’과 ‘연결고리’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모순’은 김남현의 작품의 형식적인 면에 관련하여 드러난다. <Single>과 <Confined One> 시리즈는 개인의 고립감이나 외로움 또는 주체의 정체성을 무력화 시키는 사회적 기제를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외형이 고립을 자처하는 은둔적인 형태가 아닌 굉장히 주변의 풍경에서 도드라져 보이거나 이목을 끄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개인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관계 맺기의 긴장감’을 괴로워하면서도 즐기는 듯 보이는 조각과 그 조각을 착용한 퍼포머의 모습에서 어떤 이질감이 느껴졌고, 자신의 내면을 외면화 시키는 과정에서 애절한 위트가 나타난다는 점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김남현의 초반 작업에서 보이는 이러한 모순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위트는 극한의 상황에서 나오는 쓴웃음 같은 것으로서 그의 작품이 지닌 목적, ‘내가 느낀 것에 대한 공유’ 즉 공통감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중요한 특징으로 보인다. 이처럼 감옥이자 안식처인 1인용 장치를 입힌 개인을 사회 속에 던져놓고 반응을 살펴보듯이, 그는 ‘개인’과 ‘사회’라는 거대하면서도 양 끝에 있는 개념을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듯 오고 간다.
한편 2010년경을 기점으로 김남현의 작품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게 된다. 사용하는 재료에 있어 우레탄 폼을 사용하여 조각에 즉흥성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형태적으로 흡사 곰리(Antony Gormley)의 인물상을 떠올리게 하는 초현실적인 인체의 형상들이 작업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김남현은 이 시기를 ‘타인과의 관계’와 ‘자아의 다른 모습들’에 대해 버거움을 느끼고, 관계를 맺는 인간들, 즉 인체의 형상이지만 작가의 상징과 감정, 내면 등을 담을 수 있는 반추상의 형태로 제작하였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개인으로서 사회에서 많은 집단과 각각 다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가정에서는 불량학생 같은 딸이지만 회사에는 누구보다도 싹싹한 부하직원이 되는 것이다. 김남현은 이러한 자기나 타인이 사회 속에서 마주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과 다른 집단을 만나면서 발견한 자신의 다른 모습이 부딪히는 현상에 대해 <Familiar Conflict(익숙한 충돌)>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후 제작된 <Cross Tolerance(마주한 내성)>(2017) 시리즈는 거칠게 마무리된 표면과 기괴해보이는 신체의 부분들, 머리카락, 쇠사슬 등 작가적 상징을 담은 재료들과 제목에서 이 충돌들이 결국 일종의 균형을 만들어 내성이 생긴 작가의 상태를 예측하게 한다.
이 글을 빌려 고백하자면 나는 김남현이 왜 이처럼 ‘개인과 사회’ 혹은 ‘개체나 군집’, ‘관계’와 같은 넓은 범위의 개념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지에 대하여 작가의 개인적인 성향과 경험 이외의 정확한 근거를 찾기가 어려웠고, 그가 표현하는 반추상화 된 인체의 형식과 말하려는 주제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Cross Tolerance> 시리즈와 관련하여 제작한 드로잉이 큰 힌트가 되어 주었는데, 거기에는 김남현과의 대화 속에서 그가 자주 언급했던 프랙털(fractal) 구조로 개체와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과학이나 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 프랙털은 작은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유사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선 그의 작업 <Familiar Conflict>(2016)에서 작은 머리가 모여 큰 머리를 이루고 있는 구조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러한 김남현의 ‘구조’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해체주의적인 조각들의 출발지점에 수학 논리가 존재한다는 점은 그의 작품의 본질을 읽어내는데 있어 중요하다. 또한 프랙털 구조는 증식을 전제로 하지만 개체의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는다. 누군가는 확장을 말하며 작품이 놓인 장소를 전시장에서 야외로 옮기거나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스케일의 오브제를 거대하게 바꿔놓는다면, 김남현의 확장은 레고 블록과 같은 작은 개체들이 모이고 쌓여 차곡차곡 질서를 지니면서 불어나는 것,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늘려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구조’의 존재는 다른 개체를 만날 때의 긴장감에 밸런스를 부여하며 그 긴장감을 최소화시킨다. 이와 같이 다양한 지점에서 프랙털 구조는 작가가 줄곧 이야기해 온 반추상이라는 형식, 재료, 매체에 의해 가려져 있던 개체와 개체 간의 마주봄, 만남, 확장, 번식, 연결 등을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프랙털 구조로 김남현 작업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질문은 남아있다. 다양한 시리즈 작업에서 그는 왜 하나가 아니라 다수를 전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혼자서도 하나의 개체를 이루는 단일 단위들은 어째서 남현의 작업 속에서 군집을 위한 개체가 되어야만 할까? 아마도 그것은 앞서 다룬 보편적인 긴장감이나 불안감과 끊임없이 마주 보려는 것, 대화하고 화해하려는 김남현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업은 내성적인 ‘내(개인, 개체)’가 ‘사회’와 만나며 느낀 것, 겪은 것, 지향하는 것으로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Single>, <Confined One> 시리즈에서 보여준 ‘1인용’의 개념에서 나아가 다수의 프랙털 편대로 증식하며 구조를 이루는 <Familiar Conflict>, <Cross Tolerance> 시리즈로 확장하는 과정인 것이다. 즉 그의 작업은 개인으로 출발해서 사회라는 거대한 개념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작가 역시 그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창작자이자 관찰자로서 최종 형태를 기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Speaking That Everybody Can Do but Nobody Can Do :
From Kim Nam Hyeon’s <Single> to, <Cross Tolerance>
Choi Hee seung(Curator at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Devices for Me and Others
Literally understood, this may sound too familiar or a bit ambiguous. It’s because Kim Nam Hyeon’s main interest may be summarized into relationships that individuals as humans endlessly experience in a society. As an artist whose college major was sculpture, Kim Nam Hyeon treats stereoscopy as his major medium. Having undergone formal transformation several times from the Single and Confined One series in the early portion of the first decade of the new millennium to the recent series of Familiar Conflict(2016) and Cross Tolerance(2017), the artist has delivered through the semi-abstract sculpture of the human body his thoughts on individuals and society, individuals and communities, relations and structure etc. According to the artist, he felt that certain tension developed when relating to society as an individual, having been reflected in his artistic work.
Contradiction and Link
Around 2010, Kim Nam Hyeon’s works took a turn in a different direction than he was previously going. By using urethane foam as his material, the artist included improvisation in his sculpture, thus getting surreal forms of the human body to appear in his projects. Referring to the period, Kim Nam Hyeon said that feeling overladen with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different images of self, he adopted the relating people, that is, the semi-abstract form which could carry the artist’s symbols, emotions, interior topography and so on. Kim Nam Hyeon began to ruminate on the different looks that he or others take under the changing social circumstances. He also put the title of Familiar Conflict to clash between his original look and the alternative look that he discovered when meeting other groups. The Cross Tolerance series, created afterwards, has its materials which carry authorial symbolism such as roughly finished surface, grotesque-looking body parts, hair, and iron chain, as well as the title of the work, suggest the artist’s condition in which he had developed tolerance through a kind of balance created by the conflicts.
I want to take this occasion to confess that it was hard for me to find the correct reason, other than the artist’s personal orientation and experiences, for the reiteration of such wide-ranging concepts as individuals and society, individuals and communities, or relationships and that I couldn’t stop thinking that some link was necessary between the semi-abstract form of the human body which he expresses and the theme which he wants to discuss. Thus, the drawing which he created in relation to the Cross Tolerance series served as a big hint, for it showed in full view the fractal alignment of parts and whole, which I often heard Kim Nam Hyeon mention in our conversations. Fractal, as a term used mainly in science and mathematics, refers to the phenomenon in which endlessly repeating smaller structures create a similar-looking whole. Firstly, one may bring up his work Familiar Conflict in which small heads gather to make a big head. Thus, that a mathematical logic lies at the starting point for those apparently deconstructive sculptures, which seem to be totally unrelated to his structure, is crucial to grasp the essence of his works. Meanwhile, the presence of such a structure gives balance to the tension involved in meeting some other individuals and thereby minimizes it. Thus, in various locations, the fractal structure pretty clearly explains the face-off, meeting, expansion, reproduction, and connection involving individuals that were previously covered by the form, material, and medium of semi-abstract that the artist has all along spoken of.
Even if the fractal structure can establish connections between the form and the content of
his artwork, there remain questions. Why does his work with the various series assume many instead of one? Why should the single units, which constitute singular entities by themselves, be individuals of communities in Kim’s projects? Perhaps, it derives from Kim’s intention to endlessly face up to, converse with, and get reconciled with the afore-mentioned universal tension and anxiety. In conclusion, his work takes shape from what I(an individual), reserved as I am, feel, experience, and aim at while meeting with society. In other words, his work shows what begins as an individual spreading into a gigantic notion of society, and the artist expects his final form to be a creator and observer who builds a bridge spanned between them.
An excerpt from an essay written as part of the Advising Program of Gyeonggi Creation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