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과 그로 인해 엿볼 수 있는 인간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인체를 소재로 한 입체작업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는 장소와 사람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공공장소가 지닌 공간의 물리적 구조와 신체가 서로 밀착된 상태의 결합구조를 만들어 내거나(<Single> 시리즈),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탐색한 개인과 집단의 의미를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단단한 껍질의 형태(<Confined one> 시리즈)나 서로 뒤엉켜있는 인물들의 형상(<Familiar Conflict> 시리즈) 속에 담아낸다.
부드럽고 연약한 인간의 신체와 달리, 김남현이 만들어낸 구조물은 단단하고 거칠다. 이것은 쉽게 부서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잠금장치로 신체를 결박하거나 때론 날카로운 창처럼 견고하고 예리하게 신체를 뚫고 지나간다.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구조들 사이로 드러나는 인체는 스스로 그 구조 안에 갇히거나, 조각난 신체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구조물에 의존하여 서로의 형체를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인체는 수동적으로 그 안에 숨거나, 입과 귀, 눈을 막으며 외부로부터 규정된 틀과 인식의 잣대 안에 순응하며, 이렇게 외부로부터 길들여진 신체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형상으로 김남현의 작업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김남현의 작업에 나타난 신체의 모습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일종의 자소상과도 같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독립적인 형상으로 온전히 존재하지 않고, 늘 개인이 속한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의 <Confined one> 시리즈와 <Single> 시리즈에서 각각 개인의 무의식 속에 내재한 사회적 관념이 인체의 행위를 통해 드러내는 상황과, 일정한 규칙과 규범이 존재하는 사회적 공간 안에 속한 개인의 문제를 드러냈다면, 이후 이어진 <Familiar Conflict> 시리즈에서는 한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이 타인과의 직간접적인 관계망 속에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규칙과 약속, 그리고 집단의 이념과 맞닿아 있는 이러한 관계는 개인의 삶과 주변 곳곳에 편재하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을 대변한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Familiar Conflict> 시리즈는 제목에서처럼 이러한 관계, 특히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긴장, 충돌의 관계가 익숙한 개인들 간의 친밀함 속에서 벌어지는 양상임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커다란 인체의 두상을 기점으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다양한 두상이 그것을 둘러싸거나, 온전한 현실을 내다보지 못하도록 온 몸의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더 나아가 이성적 판단의 통로가 되는 눈을 가린 채 인물의 의식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집단의 결박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그것을 뿌리치기 위한 손과 발은 사라진지 오래다. 김남현의 작업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이 되어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은 날카롭고, 기이하며, 불편하지만 끊어낼 수 없는 난제로 제시된다.
이러한 인체의 모습은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길들여진 자아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적 의미를 수반한다. 조각난 신체의 겉면에 안과 밖으로 이어진 통로로서 제시된 문의 형태나, 열고 닫기가 가능한 잠금장치, 육중한 덩어리에 비해 다소 가늘고 연약한 선들이 마음만 먹으면 끊어내기 쉽게 얼기설기 이어진 구조는 비록 사회와 집단이 요구하는 이념의 틀에 갇혀있으나, 충분히 개인의 선택과 결단으로 인해 또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정반대의 상황을 가늠해보게끔 한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이렇게 순응하는 개인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적 태도에서 벗어나, 최근에 와서는 개인의 적극적인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연출한 작업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구체적인 인체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제시했던 것도,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 제작한 드로잉에서는 인체의 행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련의 상황 속에 함께 녹여내고자 하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작업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김남현은 사회 속에 길들여진 자신을 작업을 통해 직접 마주하고, 사회 속에 산재한 다양한 관계의 구조를 보다 면밀한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그 안에 서있는 자신과 또 한 번 마주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그 실천의 방식을 탐구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황정인(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